Tuesday, April 1, 2008

Long time no see


-요즘은 눈썹이 휘날리게 바쁘다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실감을 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인터넷 서핑할 시간조차 나지 않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5월달에 서울 거쳐 중국으로 간다. 이번이 마지막 논문 자료 수집이라고 각오하고 가는 것이기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막상 가서 '어라. 이걸 생각 못 했네' 이러면 아주 곤란하니까. 사소하게는 뼉다귀에 번호를 적기에 가장 적합한 펜부터 시작해서 자질구레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만들고 있는 데이터 베이스 프로그램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컴퓨터로 워드 문서 만들고 엑셀 통계 돌리고 포토샵 작업 하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것을 주로 했지 데이터 베이스는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집하는 자료가 방대하게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데이터 베이스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차에 과감히 뛰어들어보기로 했다. 까짓거 만들어보자. 끄응. 눈이 토끼눈이 될 때까지 컴퓨터를 붙들고 앉아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면서 애꿎은 컴퓨터를 두들겨 부셔 버리고픈 충동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였던가. 드디어 데이터 베이스를 대충 완성했다. 마이크로 소프트 액세스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엑셀의 단점을 놀라울만큼 완벽하게 보충했으며 그 자체로도 상당히 훌륭한 통계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원하는대로 만들 줄 몰라 너무 속상했는데 이제는 가지고 있는 옷이나 신발도 데이터 베이스 만들어 저장할까 하는 황당한 생각마저 해 본다.

-밴쿠버에서 열린 학회에 잘 다녀왔다. 마침 밴쿠버에서 열린 친구 결혼식도 다녀왔고. 학회에서 심포지엄 끝나고 교수님들이 막 나한테 와서 자기 소개를 하며 악수를 청하는 게 기분이 제일로 좋았다. 내가 늘 먼저 나를 소개하고 악수했지 이런 적은 없었기에. 이번에 학회에서 발표한 것을 꽤 좋은 저널에 출판하기로 했다. 으흐흐. 남은 기한 한 달. 윽. 아직 서론도 시작 안 했는데.

-니나 선생님이 몇 가지 일을 부탁하셔서 그것하느라, 중국어 공부 하느라, 새로 산 접사렌즈로 사진 찍는 연습하느라 기타 등등.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새로 생긴 버릇이 있다. 쉬고 싶을 때 예전에는 음악을 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아무 소리 안 나는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는다. 머리 속을 텅 비워보려고 노력을 한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어느날 공중 부양하고 도사되는 거 아닌가.

-머리도 식힐 겸 어제는 아이작 펄만 콘서트에 다녀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아이작 펄만과 단짝을 이루어 함께 다닌다는 로한 데 실바라는 스리랑카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함께 왔다. 둘다 쥴리어드 음대 교수이다. 아이작 펄만은 전동 스쿠터 같은 것을 타고 나와 거기에 앉아서 연주를 했다. 바흐 한 곡 하고 현대 음악 두 곡 하고. 마지막 곡은 여러 개의 짧은 곡들을 아이작 펄만이 직접 소개해 주고 연주했다. 어찌나 유머 감각이 뛰어난지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계속 웃었다. 노장의 땀방울을 가까이서 보고 말겠다는 결심은 어디로 가고 그나마 한 개 남은 자리 겨우 구해서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천장에 가까운 곳에서 연주를 감상했다. 다음 주에는 에비타 뮤지컬이 온다. 바빠서 갈까 말까 했는데 이럴 때 일수록 머리를 식히는 것이 좋겠다 해서 가기로 했다. 마돈나가 노래를 잘 해서 그런 것일까. 영화 에비타 속의 노래들이 참 좋았는데 뮤지컬로 본다니 기대가 된다. 작은 동네 살다보니 이런 좋은 공연이 오면 놓치지 않고 가게 되는 장점이 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고 값도 싸다~으흐흐.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단다.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이 된다. 사람이 늙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어딘지 불쌍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학교 식당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피자를 사 와서 혼자 드시는 것을 보았다. 피자를 한 손으로 들고 그걸 입에 가져가기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이가 많이 들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피자를 겨우 입으로 넣는 그 모습. 그걸 다 드시고 지팡이 짚고 다리도 후들후들 하며 쓰레기통으로 가 빈 종이 접시를 버리고 아주 천천히 걸어가던 그 미국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왜 그리 처량해 보이던지. 아...그 할아버지에게도 나 같은 팔팔한 청춘이 있었겠지. 시간은 멈추는 것이 아니니 젊을 때 혈기가 넘칠 때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밴쿠버 다녀와서 불과 세 시간의 시차를 극복하는데 자그마치 사흘이나 걸린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서른 살이 된 것이다!

-밴쿠버에서 돌아와 보니 우체통에 익스프레스 메일로 소포가 왔으니 우체국에 와서 가져라가는 쪽지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소포를 보낸 것일까. 우체국에는 포장부터 아기자기하게 예쁜 소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일본에서 온유 언니가 또박또박 빼곡하게 카드 한 장과 함께 일본 과자를 보내준 것이었다! 이제 다섯 달 된 아들이 있고 동경대 연구실에서 포닥을 하고 있는 온유 언니. 아기 키우랴 연구하랴 얼마나 바쁠텐데 그 와중에 나를 생각해서 비싼 익스프레스 메일로 카드와 과자를 보내주다니. 일본 과자답게 포장도 진짜 깔끔하고 예뻤다. 언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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