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3, 2008

Amish

어제는 우리 과 학생들이 이 동네로부터 약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미쉬(Amish) 마을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학원생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약 40여 명이 함께 찾아간 곳은 미국 사람 눈으로도 신기하다니 나같은 한국 사람 눈으로는 더더욱 신기한 그런 곳이었다.


-아미쉬 어린이들. from wikipedia.org-


일단 그 동네에 들어서자 사방 팔방이 깜깜했고 군데군데 마차가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요더(Yoder)씨네 집이었다. 턱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나이 지긋한 요더 아저씨가 우리를 맞이했고 집에 들어서자 하얀 모자를 쓰고 파란 단색 원피스를 입은 요더 아주머니와 요더씨의 딸들이 부엌일을 하고 있었다. 까만 바지에 파란 단색 남방을 받쳐 입고 멜빵을 한 요더씨의 아들과 손자도 부엌일을 거드는 중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옆으로 길쭉한 테이블에 40여 명이 앉자 요더 아저씨는 그 우두머리 석에 앉으셨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셔서 우리 모두 식사 기도를 했다.

이날 나온 음식은 물론 모두 집에서 재료의 수확에서부터 끝까지 그들이 만든 것이었다. 심지어는 버터도 요더씨네가 기르는 소의 우유로 만든 것이었고 딸기잼도 직접 수확한 딸기로 만든 것이었다. 줄기콩과 간소고기를 볶은 것, 매시 포테이토, 고구마 으깬 것, 소고기 스튜, 크림소스 파스타, 오색 야채로 만든 피클이 주메뉴였고 후식으로 사과파이, 치즈케잌, 초콜렛케잌과 달달하게 절인 배에 커피가 곁들여 나왔다. 정말 맛있었다. 후식을 마치자 멜빵을 멘 아미쉬 손자들이 우리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Amazing grace" 찬송가가 인쇄된 종이였다. 요더씨의 지휘 하에 우리 모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러야 했다. 그 다음에 요더 아저씨는 우리에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어디 출신인지 가족은 몇 명인지를 말해달라고 했다.


-아미쉬 마을의 옥수수 수확-


이런 신기한 삶을 사는 이들은 누구인가. 아미쉬는 18세기에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스위스-독일 (가끔씩은 네덜란드)계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종교인데 이는 기독교와 매우 비슷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극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내에만 약 20만 명의 아미쉬가 살고 있으며 이들은 인구 증가가 가장 빠른 집단 중 하나라고 한다. 오하이오주에 가장 많은 아미쉬가 있다고 하고 그 다음이 펜실베니아라고 한다. 이들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철저히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산다. 사유 재산을 최소화 하고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적 가르침 때문에 이들은 전기도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요더씨네 집을 밝히고 있는 것은 몇 개의 촛불 뿐이었다. 기계의 사용 역시 최소화 한다고 하는데 이는 기계에 의존하게 되면 그만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공동체의 의미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입는 옷도 단색인데 대부분이 짙은 파란색이나 검은색이며 남자들은 거의 멜빵을 한다. 입는 옷에 달린 단추의 수나 모양까지도 제한을 둔다고 한다. 아미쉬는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아프면 이들이 직접 만든 전통약을 먹거나 동네 아미쉬 의사에게 간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아미쉬-


아미쉬는 8학년 이상의 교육은 거의 받지 않는데 이는 8학년까지만 다니면 아미쉬 삶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미쉬는 아미쉬끼리 결혼을 하는데 이 때문에 기형아가 태어나는 확률 또한 높다고 한다. 미국 내에 있는 20만 명의 아미쉬가 모두 18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단 200명으로부터 태어난 후손이기 때문에 그만큼 유전자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계속해서 집단 내 결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 생각에 젊은 아미쉬들은 이 생활을 싫어하고 도시로 떠나고 싶어할 것 같지만 아미쉬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아미쉬 생활 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아미쉬 집단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데도 아미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 저속함에 찌들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사람들. 나더러 이렇게 살라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여러 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삶의 방식이었다.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나자 원하는 사람은 빵이나 파이 혹은 아미쉬 스타일로 뜨개질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다보니 겨울에는 아무래도 생계 유지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소개하며 소량의 수입을 얻는다고 한다. 나는 맛있는 빵을 한 덩어리 샀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그저그런 빵도 3불이 넘는데 이건 2불 밖에 안하니 웬지 미안하기까지 했다. 마차가 즐비한 동네를 떠나 빵 한 덩어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니 잊어버리고 가지고 가지 않았던 사진기가 문 앞에 덜렁 놓여 있었다. 알고보니 아미쉬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진 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날이 풀리면 아미쉬 마을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

6 comments:

Unknown said...

무척 인류학적인 저녁 소풍이었겠네. 나는 오늘 음..토플 시험을 봤는데.(이건 왜 또 유효기간이 2년밖에 안되는거야? T.T) writing 주제가 '사람의 삶을 단순하게 하려는 테크놀로지가 많은 경우 오히려 우리 삶을 복잡하게 한다'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논하라. 뭐 이런 거였는데, 먼저 알았더라면 아미쉬 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었겠네.^^

기술에 압도되지 않고 자신 본연의 삶을 찾으려는 노력을 정신바짝 차리면서 하지 않으면 그냥저냥 기술과 자본에 이끌려서 휩쓸려가게 되는 시대인 것 같아.

여하튼 즐거운 하루 하루 되렴^^

Anonymous said...

어제 밤 읽던 책에 아미쉬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주현씨 글을 읽으니
신기하네요. 좋은 경험이었겠어요...

Psyched said...

우리동네 시골장터에 주말마다 아미쉬부부가 농사지은것들 팔러 온다. 누렁이가 보고서는 "아미쉬"라고, 저사람들 종교집단에서 같이 살고 농사 지어서 먹고 산다고 그러더라고. 먼소린가했는데,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있다.

Anonymous said...

저런 사람들이 이런 시대에 미국 땅에서 살고 있다니 정말 신기한 걸.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고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

hedgehog said...

*재윤 오빠-듣고 보니 참말로 인류학적인 소풍이었네요. 토플 시험은 잘 보셨으리라 믿어요~나머지 지원 준비는 잘 되시구요? 미소 천사 리라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겠네요. 요즘 런던 날씨는 어때요?

*언니-진짜 신기하네요! 언니 사진 기다리는 중~받는대로 연락 드릴게요. 고마워요!

*곰팅-너희 동네에도 아미쉬들이 있구만. 혹시 그 동네 아미쉬는 빵이나 파이 이런 거 안 팔어? 팔면 꼭 먹어봐. 오곡빵 이런 거 절대 아닌 하아얀 솜살 식빵이야. 임신곰이어서 솜살 식빵 냄새도 싫은 거 아냐?
^^

*밀림의 공주님~ㅎㅎ 미국에 이제 5년 살았는데 그동안 느낀 것 중 하나가 미국 몇 도시 빼고는 미국만큼 시골인 곳도 없겠다는 것. 어렸을 때 영어 교과서에서 배운 "마천루" 이런 거 다 거짓말이더라 ㅎㅎ 뉴욕 맨하튼만 빼고.

Anonymous said...

* 그렇구나. ^^ 미국 참 재미있는 나라인 듯. 잘 찾아보면 '설인'도 있고 '식인종'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인 걸. -_-;;

* 밀림의 왕자 이름은 봤니? 내 블로그에서 네 댓글에 댓글 달았다가, 밀림의 왕자가 웹상에 자기를 드러내지 말아줬으면 하기에 곧 이름을 지웠거든. ^^ 네이버 검색창에 '밀림의 왕자'를 쳐 보면 나올 거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