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February 20, 2008

Don't judge me!

*이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음식점 중 하나인 그린 보울(Green Bowl)에서 아냐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 음식점은 특히 백인들한테 인기가 많은데 나는 그저 그랬다. 샐러드바에서 원하는 야채를 고르고 그 옆에 있는 약 20가지 드레싱 중에 원하는 것을 뿌린 다음에 원하는 고기(소고기, 닭고기, 새우)를 고른 후 그것을 요리사 아저씨에게 넘기면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철판구이를 해 준다. 그런데 내가 양념 몇 스푼을 넣어야 맛이 나는지 혹은 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먹어보지 않고야 어떻게 아느냐 이 말이다. 심지어는 다진 마늘도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만들어 본 적 없는 철판구이에 얼만큼 들어가야 맛이 날지 어떻게 아느냐 이 것이다. 원하는 재료로만 요리가 되어 나오니 크게 맛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간이 애매하게 덜 된 것이 웬지 2프로 부족했다. 자고로 음식을 잘 하는 식당이라면 요리사가 비밀의 레시피를 가지고 양념의 비율을 맞춰서 척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재료도 나더러 고르라 하고 양념도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하니 이건 완전히 요리사의 책임 회피가 아닌가? 나는 아무래도 구닥다리인가보다.

*이 동네에서 내가 잘 가는 헌책방 겸 커피숍이 있다. 그곳에 가면 책장 사이사이에 소파도 있고 흔들의자도 있어서 아예 자리잡고 앉아 한참 이것저것 읽기에 딱 좋다. 인류학 책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어째 매번 새로운 책이 눈에 띄는 것일까. 오늘도 책을 네 권이나 샀다. 20불에 네 권. 게다가 하나같이 유명한 책들이니 사길 잘했지 싶다. 그나저나 읽기나 해야할텐데.

*요즘은 내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가는 S양은 원하던 좋은 학교에 교수직을 잡았고 역시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가는 P양은 아기를 가졌단다! K양은 무사히 첫 아이인 뽀야를 낳았고 Y언니도 무사히 둘째 딸인 상하를 낳았으며 H언니도 역시 무사히 둘째 딸 다연이를 낳았고 O언니는 첫 아들 윤재를 낳았다. 그야말로 경사났네 경사났어~모두모두 축하합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참말로 부럽습니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호호.

*두 번의 이혼과 불임진단. 이후에 정자기증을 받아 마흔 두살에 첫 아이를 낳은 허수경. 그녀의 선택을 두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처음부터 아빠 없는 아이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부터 이상한 아빠보다는 없는 아빠가 낫다는 생각까지. 내 생각에는 허수경 자신만큼 이 사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없을 것 같기에 그녀의 선택을 지지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남편은 없어도 되지만 아이에게 아빠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엄마 아빠가 함께 키우는 아이보다 제 아이를 더 잘 키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짐을 아이에게 지워준 것이 너무나 미안하지요. 하지만 누구나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그런 결함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힘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요." 멋지다. 그래도 혼자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는 모습을 보니 쓸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해 아이를 입양해 키우기도 하고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자라는 아이도 있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한 가정에서 자라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엉망진창으로 상처를 받고 자라는 아이도 있고 아예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도 있으며 신애라와 차인표의 아이들처럼 친부모 혹은 입양 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도 있다. 어떻게 자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까. 아니 가장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있기는 한 것일까. 겉으로 볼 때는 모자라 보여도 속내가 알찬 경우도 있고 겉으로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보여도 속내가 폭탄 맞은 집 같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남편의 어떤 면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믿으며 그 사실을 남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남편도 그녀도 참 불행해 보인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가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영어로 judge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사전에 나오는 뜻 그대로 '판단하다'의 뜻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친구끼리 이야기할 때도 "I hope you don't judge me." 혹은 "Please promise you won't judge me." 이런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는 나의 말 또는 행동을 통해 '쟤는 저런저런 사람이구나' 하면서 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는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쉽게 풀어 말하면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심각하게 "You are being judgmental."이라고 하면 대판 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되리라.

우리들의 가장 흔한 실수가 '나중에 이것이것을 꼭 고치도록 하고야 말겠어' 혹은 '지금은 안 좋아 보이지만 내가 어떻게든 노력하면 저걸 고칠 수 있을거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자신더러 남의 일면을 고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버리라고 한다면 그게 그리 쉽게 되겠는가.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의 어떤 면을 알게 된 상태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던지--이 둘 중 하나를 해야 현명한 것이지 내 마음에 들도록 그 사람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심하게 표현하면 오만이라는 것.

나는 어떠했는가. 돌이켜보면 나도 그런 면이 없었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물론 지금도 친구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고 가끔씩 참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남을 judge 할 때가 있다. (역시나 행동보다는 말이 백만배 쉽다!) 하지만 지난 일 년동안 스스로 가장 많이 한 연습이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 것이지 싶다. 하물며 핏줄을 나눈 가족도 서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사는데 내 친구가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무리인가. 예전 같으면 누구는 저래서 맘에 안 들고 누구는 또 이래서 싫고 하는 생각들을 했을텐데 요즘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긴다. 나 역시 남들에게 완벽한 인간일 수 없기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 역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인연이 진짜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 comments:

Anonymous said...

그러게, 그 음식점 머리 좋은데요.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 탓이 되다니...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
말처럼 쉽지 않죠?
저도 갈 길이 머~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참, 엘까미노에 있던,
금밤테 사람들이 잘 가던,
피자도 맛있었던,
그 술집 이름이 뭔가요?
그집 밀맥주도 정말 맛있었는데... ^^

Anonymous said...

흠. 많은 걸 생각하고 감. ^^
허수경이랑 judge에 관련된 부분.

그 음식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DIY취향인 걸까? 음, 그럼 백인들이 DIY취향이 많은 건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