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6, 2007

Christmas 2007

이야기 하나.
내가 한 일곱살 쯤 되었을 때였던가. 잠실 우성 아파트에서 맞이했던 크리스마스였다. 바깥은 춥고 집은 따뜻해서 베란다쪽 유리창에 성에가 잔뜩 꼈다. 이미 깜깜해 진 밤이었고 우리 가족은 하하호호 크리스마스 이브를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엄마가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무얼 받고 싶어? 유리창에 적어둬. 산타 할아버지가 읽을 수 있게." 그 때 나는 '미미의 목욕탕'이였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게 꼭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또박또박 산타 할아버지가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에 적었다.

기억은 하나의 이미지로 남는다고 한다. 그날 밤. 행복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 다음날 놀랍게도 나는 미미의 목욕탕을 받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도대체 왜 목욕탕이 가지고 싶었을까 싶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랬다.)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로 내 글씨를 읽으시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았던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이야기 둘.
할머니께서는 동백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이화동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면 파란색 커다란 화분에 제법 큰 동백꽃 나무가 현관 쪽에 있었다. 빨간 색의 동글동글한 꽃잎이 어린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다. 어느 크리스마스날 아침. 그 동백꽃 나무 밑에서 10권짜리 어린이 백과사전을 발견했다.

이야기 셋.
싱가폴에서 맞이했던 크리스마스. 이 날 산타 할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에게 어린이용 우산을 선물해 주셨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우산에는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그 캐릭터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데, 산리오에서 나온 남자 여자 아이 천사 뭐 이런 것이었다. 내 우산은 파란색이었고 동생의 우산은 노란색이었다. 우산에 각자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글씨체가 엄마랑 똑같았다. 혹시 엄마가 산타인가 하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산타 할아버지 글씨가 어쩜 엄마랑 이렇게 똑같냐고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던 크리스마스였다.

이야기 넷.
열서너살 되었을 때였나. 크리스마스 아침에 온 가족이 교회에 함께 갔다. 예배가 끝난 후 큰이모네 가족을 만났다. 다 함께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날은 눈이 펑펑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것 그리고 그래서 즐거웠던 것 만은 생생하다.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땡스기빙이 끝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선물 사기 열풍도 그렇고 우리 나라 추석에 집에 가듯 모두들 가족에게로 돌아가서 학교가 텅텅 비는 것도 그렇다. 어린이들만 선물을 받곤 하는 우리 나라와 달리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는 어른들도 선물과 카드를 주고 받는다. 그야말로 선물의 날이다. 나는 어제 고맙게 크리스마스 모임에 초대 받았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있는 엄청난 양의 선물을 보고 순간 이게 장식용인가 할 정도였다. 터키와 햄을 각종 샐러드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크랜베리 파이, 브라우니, 초콜렛칩 쿠키 기타 등등을 또 다시 배 터지게 먹었다. 선물로 보라색 장갑과 목도리 세트, 자스민 캔디, 코코아 가루를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엄마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엄청 부드러운 토끼털이 달린 남색 코트부터 드레시한 치마까지 또 선물이 한 꾸러미 나왔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상업화 되어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 줄까 고민하며 고르는 정성이 좋아 보인다. 이제 곧 2008년이군. 진정 내가 서른 살이 되는 해이다. 윽.

Sunday, December 16, 2007

Lucky Girl

어떤 사람들은 경품 추첨을 해서 냉장고까지도 타고 내 동생은 친구와 로또 2등에 당첨이 되기도 하더만, 내 인생 최고의 당첨은 유학 오기 전에 삼성동 마르쉐에서 전동칫솔을 받은 것이었다. 그 외에 자잘하게 '치토스 한 봉지 더' 이런 류의 행운은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지난 주말에 우리 과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다. 각자 음식을 해 가야 했기에 나는 M양에게 배운 김치전을 만들었다. 손바닥만한 김치전을 30개 정도 부쳐서 예쁜 이름표를 만들어 "Kimchi Pancake. 김치전. Kimchi+Onion+Flour. No meat"이라고 적었다. 나 하나 빼고는 모두가 하얀 백인인 이 과에서 사람들이 김치전이라는 것을 봤을 리가 없을 것 같았고 시뻘건 이게 도대체 뭔가 궁금해 할 것 같아서였다. 나에게야 너무 맛있는 김치전이지만 혹시나 맛 없어 하면 어떡하나 했는데 불티나게 잘들 먹더군. 베리 굿을 연발하면서. 으흐흐.

얘기가 다른 데로 새었다. 이 날 파티에서 재미난 선물교환 놀이를 했다. 태평양의 트로브리안드 섬들에서는 쿨라(kula)라는 이름의 선물교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문화 인류학자들이 보고하면서 쿨라라는 특이한 선물교환 제도가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인류학과 답게 선물교환놀이의 이름은 쿨라라고 붙여졌는데 일단 선물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모두 선물을 앞에 내 놓고 번호표를 뽑는다. 1번부터 한 사람씩 선물을 열어보는데 이 때 뒷번호를 가진 사람은 앞 사람들이 가지게 된 선물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빼앗을 수 있는 행운(!)이 있는 게임이었다. 빼앗긴 사람은 또 다른 사람 것을 빼앗아 오던가 새 선물을 열면 되었다. 단 첫 사람이 뺏은 선물은 그 라운드에서는 다시 다른 사람이 뺏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규칙 하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은 맨 마지막 번호를 가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나였다! 62번! 그리하여 나는 모든 이들의 선물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젱가(Jenga) 게임을 빼앗어 가지게 되었다.

이미 여기서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입이 찢어져 있던 나는 쿨라 게임 이후에 시작된 다섯 명에게 추첨을 통해 학과에서 선물을 주는 행사에서는 아예 입이 귀에 걸려버렸다. 니나 선생님이 무작위로 이름을 추첨해서 선물을 주는 식이었는데 놀랍게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내가 받은 선물은 자그마치 50불짜리 상품권이었다. 만세!

단 하나의 흠이라면 그 50불이 술 가게(리커 스토어) 상품권이라는 것이다. 나는 맥주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동네 리커 스토어에서는 맥주를 팔지 않는다. 맥주는 병 가게(바틀 샵)에 가야 살 수 있고 리커 스토어에서는 와인, 위스키, 소주(!), 꼬냑 등등 이런 것만 판다. 흠냐...뭘 마시지?

Wednesday, December 12, 2007

December 12, 2007

*가끔씩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속이 상하고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1. 나는 A와 친하다. 나는 또한 B와도 친하다. 그런데 A와 B가 서로를 싫어한다. A는 나더러 B를 멀리하라고 하고 B는 나더러 A는 바보 멍청이라고 한다. 그 둘 사이는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태여서 화해 불능이다. 문제는 그들 간의 관계와는 별도로 나는 A도 B도 모두 좋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 때문에 A와 이야기할 때에면 B가 생각나 조심스러워지고, B와 이야기할 때에면 A가 생각나 조심스러워진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2.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갑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하라 하고 을에게 물어보니 또 저렇게 하라고 한다. 갑과 을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이어서 내용을 정리해 다시 갑에게 물어보니 을이 틀렸다 하고 을에게 물으니 갑이 틀렸다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미국 이민법이 걸려 있는 문제여서 답이 두 개일 수가 없다. 갑과 을 모두 좋은 사람인데 결국 갑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문제는 갑자기 내 앞에서 을이 갑에게 전화를 하더라는 것. 을이 갑에게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의 요지인 즉슨 "지금 내가 J양 서류를 처리 중인데 당신은 어째 이것도 똑바로 못하냐"였다. 윽. 옆에서 듣는 나까지 무안하니 갑은 얼마나 무안했겠는가. 나중에 갑을 만났다. 갑은 나에게 그 때 자기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말투로 봐 내가 자기를 바보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상황이 갑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비자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갑이든 을이든 맞는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머쓱 미안해졌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닌걸.

*어젯밤에는 갑자기 아파서 혼이 났다.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듯 뇌가 숨을 쉬는 듯한 그런 두통이 계속 되었다. 약을 먹고 자그마치 14시간이나 잤다. 잠 오는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땀까지 뻘뻘 흘리며 잔 것을 보니 아프긴 아팠나보다. 오늘도 하루 종일 겔겔 거리기는 하였으나 거의 다 나았다. 빨리 나아서 좋기는 한데 도대체 이건 뭔가 싶다.

*온 머릿 속이 논문으로 가득차 있다. 타임머신이 있어서 9천년 전 중국의 운남성으로 가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Monday, December 10, 2007

December 10, 2007


-여차저차한 이유로 특이한 곳에 다녀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박사논문 연구와 관련해 사슴 도축하는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진 J양은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 본 후 드디어 이 동네 사슴 전문 도축 아저씨를 발견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낚시를 한다는 사람은 봤어도 사냥을 한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사냥을 은근히 많이 한다고 합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입해 사냥 허가를 받고 하는 것이지요. 곰 사냥철은 땡스기빙 전에 끝났다고 하고 지금은 사슴 사냥철입니다. 사슴을 잡아서 이 아저씨네 가게에 가져다 주면 40년 넘게 이 일을 해 온 전문가 아저씨가 쓱쓱 원하는대로 사슴 고기를 만들어(?) 줍니다. 내가 잡은 사슴 고기로 햄버거를 만들고 싶다--고 주문을 하면 이 아저씨네 가게에서 살을 잘 발라낸 후에 햄버거 고기로 다져서 줍니다. 소세지를 원하면 소세지로 만들어 주고요.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그리하여 성도 이 동네 토착 성인 검모(Gummo)인 아저씨. 왼쪽은 아저씨의 아들인데 가업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검모 아저씨네 가족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뿌듯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하는 보기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저씨의 칼 다루는 솜씨 정말 멋있었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열심인 온 가족들도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덕분에 사슴 고기도 먹어봤어요. 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J양은 순간 겁이 나기도 했지만 막상 먹어 보니 소고기에 양고기를 섞어 놓은 듯한 맛이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찾아가서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 질문에 질문을 늘어 놓았음에도 시종일관 친절하게 답해준 검모 아저씨. 고맙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기 꺼려하는 일들을 해 주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아니면 삼겹살 갈빗살 항정살 먹을 수가 없으니 오히려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사진 속에 보이는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도라가 된 기분입니다. 오늘 오후에 교수님들과 중요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한동안 이것 준비하느라고 사진 속 도라 마냥 책가방 메고 학교로 뛰쳐가고 집에 와서 콕 쳐 박혀 읽고 또 읽고. 게다가 이번에는 친구들까지 괴롭혔습니다. 통계학 리뷰를 하다가 이해가 안 되길래 바로 두 군데 도움을 요청했지요. M양과 미시간의 닥터 박이 찍혔습니다. 흐흐. 둘다 어쩌면 그리 설명도 잘 하고 아는 것도 많은지. 바로 이해가 쏙쏙. 똑똑한 친구들을 둔 게 마구 자랑스럽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고마우이!

-8명의 교수와 나.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니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시작 못하고 준비해 간 종이만 바라보면서 버벅버벅. 그 존재만으로도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세계적 석학이 몇 분 계셨기 때문에 더 떨리더군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니 진정되고 나중에는 내 연구가 왜 이렇게 흥미 있고 중요한가에 대해 열변을 토했지요. 말이 끝난 후에 무안할 정도로 혼자 지나치게 심취했습니다. 윽. 교수님들 표정이 딱 이랬습니다. '쟤가 별로 아는 건 없어도 진짜 연구 주제를 사랑하긴 하나보네.' 한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되고 결국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연구실 친구인 홀리와 안야 그리고 나-이렇게 셋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이 학자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시기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대학원 과정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 몇 년 간은 논문과 상관없이 들어야 할 수업이 많았고, 그리고는 논문자격심사 때문에 정신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알고 박사논문의 끝이 보입니다. 재미있어 하는 그걸 그냥 매일매일 하면 되니 얼마나 행운인가요. 이제 몇 년 안에 직장을 찾으러 잡 마켓(job market)에 나가게 될텐데 그러면 또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요. 주변에서 박사 학위 받고 취직하려는 이들을 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화려한 이력서가 있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더라고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들 하는데 막상 이 분야에 들어와 보니 준비 정말 잘 된 사람들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행운은 그 중 극소수에게만 돌아가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걱정도 없고 학비 걱정도 없고 기타 등등 다른 걱정할 것도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네요. 그러니 잠이 부족하다 징징 대지 말고 머리가 터져 나간다고 투덜대지도 말고 같이 놀 사람이 별로 없다고 칭얼거리지 말고. 앞으로 몇 년 안에 휘리릭 사라져 버릴 이 소중한 시간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오랜 만에 실컷 자고 내일 다시 책가방 멘 도라가 되어 학교 가야겠네요.

Wednesday, November 28, 2007

Thanksgiving 2007

미국인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없으면 심심해서 못 살 것이라더니 정말이지 싶습니다. 이 큰 나라가 들썩거리는 기분이 드니 말이지요. 한동안 박사 논문 준비를 위해서 미친듯이 닥치는대로 이것저것 읽어대느라 거북목 증후군이 생겼다고 야단법석을 떨던 J양은 땡스기빙 휴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놀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놀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덕에 거북목 증후군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학기말 모드로 전환하려니 갑자기 적응이 안 된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즐거운 한 때를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북경에 있을 때 같은 연구소에 있던 일본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밖에 모르는 J양과 영어가 서툰 나오와 히로꼬. 이들은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냥 하하호호 하며 중국에 사는 비애(?)를 나누곤 했더랬지요. 나오와 히로꼬가 미국에 학회가 있어서 온다길래 오는 김에 뉴욕도 들러서 함께 놀자고 했더니 정말 왔습니다! 그들은 일본인다운 꼼꼼함으로 뉴욕에서 무얼하고 놀아야 하는지 아주 자세히 조사를 해서 왔더군요. 그 덕에 J양은 맨하튼을 꼼꼼히 누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떤 가게에 들어가서 히로꼬와 거울샷!

-나의 학부시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M양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전했을까요. 그 M양은 또 H양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더랬지요. 신기하게도 2007년에 J양은 펜실베니아로 M양은 뉴저지로 H양은 매사추세츠로 이사를 했답니다. 땡스기빙 휴일을 맞이하여 J양과 M양은 차를 몰고 H양을 만나러 하버드 대학으로 향했습니다. 현대 미술사학 박사과정에 당당히 입학한 우리의 자랑스런 H양을 만나러 말이지요. 언제나 유쾌한 H양은 여전히 유쾌했고 그녀 덕분에 하버드 기숙사에서 며칠을 묵어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셋이 만났는데 술 한 잔 안 할 수 없지요. 근처 맥주집에 가서 닭튀김과 오징어튀김을 곁들여 홀짝홀짝.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다들 얼굴색이 이상하네요.


기숙사에서는 무얼 하고 놀았느냐. 매트리스 한 개는 손님용으로 빌려주는데 두 개는 안 빌려준다고 한답니다. 그리하여 J양은 그녀의 거위털 침낭을 가지고 갔지요. "이 침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야, 킬리만자로 정상에 다녀왔다네" 하고 잘난 척을 하는 J양. 침낭에서 자 본 적 없다는 나머지 두 명의 그녀는 번갈아 가며 이렇게 침낭 속에 들어가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말똥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10대 소녀도 아니면서 뭐가 이렇게 재밌고 좋았을까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더니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수다를 마감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 원없이 먹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진 올렸다고 M양에게 비난을 받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어인 일인지 구글에 답글 남기기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녀 역시 그 중 하나랍니다!)



-땡스기빙 당일날에는 보스턴에 사는 미국 친구 쎄라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남동생의 장모님 집에 갔습니다. J양은 참 오지랍도 넓지요. 맛나는 그레이비 소스를 뿌린 터키와 매시 포테이토, 크렌베리 소스, 새싹 양배추(?), 애플파이 등등. 쎄라와는 2000년에 온두라스의 마야 유적에서 함께 땅을 파던 사이인데요, 그 이후에 보스턴에서 만난 것만 벌써 이번이 네 번째네요. 진짜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인도 남편 그리고 눈이 엄청나게 큰 그녀의 아들 제이. 행복해 보이는 친구가 보기 좋았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쎄라의 남동생 부부와 집 주인인 장모님.


-땡스기빙 휴일에 또 한 가지 일을 하였으니 바로 우리 랩 동기인 안야(Ania)와 맨하튼을 누볐다는 것이지요. 뉴저지에 있는 M양까지 함께 셋이서 친구의 친구 뭐 이런 사이로 만나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이곳에서 인기 많은 유태인 음식점 가서 신기한 것들도 먹어보고 등등.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을 하다가 특이한 벤치를 발견해 찍은 사진입니다. 나무 울타리의 일부가 벤치더라고요.


*이렇게 하여 땡스기빙이 지나가고 이제 미국은 크리스마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학교는 기말고사를 향해가고 있고 J양은 또 다시 할 일 산더미에 묻혀서 지난 일주일 여 열심히 논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츠나미 같은 3주가 지나가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 때를 기약하며 다시 한 번 화이팅!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07년 11월.

Tuesday, November 13, 2007

Turtle neck syndrome

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간 1997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을 주구장창 보내는 일은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소위 PC통신이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나 모든 학생들이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PC통신 동호회들이 활성화 되었으나 그 역시 요즘에 비하면 참으로 소규모라 할 수 밖에 없다. 파란 화면에 접속 전화번호를 넣으면 전화 걸리는 소리와 함께 지지지직 하다가 드디어 서버에 접속이 되면 하얀 글씨들이 주루룩 뜨던 그런 원시적인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게임방이 아닌 당구장을 갔으며 집에 돌아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많았다. 워드로 숙제를 해서 내야 했을 때에는 집에서 타이핑을 해서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학교 전산실에 가지고 가서 출력해서 내곤 했다.

핸드폰이라는 것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던 그 때에 우리들은 삐삐를 들고 다녔다. 삐삐 인삿말을 어떻게 녹음할 것인가 혹은 급하게 연락을 기다릴 경우에는 전화번호 뒤에 8282 등을 치는 것-이런 것이 우리들의 관심사였다. 그 때 즈음해서 원샷 018이나 거짓말도 보여요 016 같은 휴대전화들이 업계에 등장하면서 길거리에는 수많은 가판대가 설치되어서 공짜 전화기를 주면서 가입자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어디선가 얻게 된 씨티폰이라는 것을 잠시 들고 다녔다. 씨티폰이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이는 움직이는 공중전화와 같은 것으로 사용료는 공중전화와 같이 저렴하지만 걸어다니면서 쓸 수 있는 그런 휴대폰이었다. 문제는 지하에 내려가거나 공중전화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에 가면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012 모토롤라 삐삐와 씨티폰은 나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 미술사 시간에 발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미술사 서적을 펴 놓고 필름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그걸 들고 현상소에 가서 슬라이드 사진으로 현상한 다음에 슬라이드 기계에 넣고 프로젝터를 돌려 발표를 했다. 고고학 시간에는 커다란 도화지를 사서 거기다가 두꺼운 매직으로 어쩌고 저쩌고 적은 다음에 그걸 칠판에 붙여 놓고 발표를 했다.

내가 지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불과 10년 전이지만 적어놓고 보니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 마냥 원시적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은 지난 10년 간 엄청난 발전을 해서 이제 나의 하루는 컴퓨터 앞에서 시작해서 컴퓨터 앞에서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아예 집전화도 없이 휴대폰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 이제는 커피숍이나 공항 같은 곳에서도 무선 인터넷이 되고 손가락보다 작은 메모리스틱에 엄청난 양의 문서를 저장할 수 있다. 요즘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필요하면 스캐너로 쓱 스캔해서 컴퓨터에서 손질한 후에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그걸로 발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니 필름 사진기와 현상소 그리고 도화지와 칠판이 웬말이란 말인가. 정녕 그렇게 발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박사논문 관련된 자료를 수집할 때에도 이제는 굳이 도서관에 갈 필요도 별로 없어졌다. 웬만한 저널들은 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을 수 있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참고문헌들에도 링크가 걸려 있어서 그냥 그걸 꾹 눌러주면 또 필요한 논문을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 박사논문도 컴퓨터로 쓰는 것이 당연하고 교수님들과 의사소통을 해야할 일이 있으면 이메일로 한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신문을 읽으려면 그것도 컴퓨터에서 하고 물건이 필요해 구입해야 하면 그것도 아마존에서 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가 컴퓨터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바로 어깨와 목 결림이다. 특히 요새처럼 아침부터 12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상황에 놓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어깨와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저 위의 그림 속에 보이는 거북목 신드롬이란다. 윽. 내가 약간 거북목 경향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이 전형적인 증상인 줄은 몰랐다. 그림이 너무 적나라해서 무섭다. 컴퓨터 화면에서 튀어나온 거북목 거북이도 그렇고 사람의 등에 붙어버린 거북이 등딱지도 그렇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자세를 교정해야겠다. 앞으로도 컴퓨터를 더 쓰면 더 썼지 덜 쓰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냥 조금 아파요 이렇게 시작했다가 근육이나 인대에 손상이 생기면 정말 곤란하겠다. 오늘은 작정을 하고 누워서 목을 높여주고 책을 읽고 있으며 컴퓨터 앞에서는 의식적으로 목을 뒤로 당겨주고 있다. 찜질팩도 해 보고 요가도 해 보고 스트레칭 별거 별거 다 하는데 몇 달째 계속 아프다. 설마 만성 거북목이 된 건 아니겠지. 당분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기로 했다.

갑자기 '구지가'가 생각나는 것은 또 뭔가.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 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뭐 이런 것 아니었나. 목이 아닌 머리였던가. 거북이는 목과 머리의 구별이 힘드니 목이나 머리나. 그나저나 나는 '구지가'를 반대로 불러야 하겠다. 거북아 거북아 목을 집어 넣어라 그러지 않으면 삶아 먹으리.

Friday, November 9, 2007

November 9, 2007

The Chronicle for Higher Education에서 교수 연구 업적을 기준으로 계산한 인류학과 랭킹이 발표 되었습니다. 지금 와 있는 이곳이 일등을 했네요. 랭킹이라는 것이 왜곡과 오류도 많기 때문에 쓸모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쨌든 일등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내가 일등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좋네요. 이런 교수님들과 일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첫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눈이라니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니나 선생님이 한 달 간의 중국 필드 연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날입니다. 시간 잘 가네요.

Thursday, November 8, 2007

I moved!

몇 가지 이유로 블로그 옮깁니다. 1년 만에 이사하네요. 2002년 라이코스로 시작해서 네띠앙과 가비아 그리고 홀리넷을 거쳐 네이버까지. 결국은 구글로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구글이 영 맥을 못 추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구글의 위력이 상당하지요. "검색해봐"라는 말을 "구글 잇!"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마치 "네이버에 물어봐" 내지는 "지식인 검색해 봐" 이런 식이라고나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로 저 역시 구글을 참으로 좋아하고 애용하는 사람이기에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를 통합해서 구글 하나로 옮기는 중입니다. 네이버만의 장점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이곳에서는 접속 속도가 느려터져서 속도 터지려고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그런 저런 이유로 이사했습니다. 예전 네이버 블로그는 링크 걸어 두었습니다. 진주현닷컴으로 접속하는 속도가 느리다면 이 주소로 직접 오셔도 됩니다. http://jinjoohyun.blogspot.com/ 언젠가는 그동안 쓴 글들 중에 애착이 가는 것들을 모두 모아서 정리해 보고 싶은데 아직은 시간이 안 나네요. 아차. 그리고 여기는 로그인 안 해도 답글 남길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단, 스팸 댓글을 방지하기 위해 답글을 입력한 후 창에 뜨는 글자를 입력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합니다. 지영 언니, 유경 언니-답글 남겨주세요!! 호호.

며칠 전에 일광 절약제가 끝나서 이제는 오후 다섯 시만 되면 깜깜해집니다. 그대신 아침은 약간 일찍 밝더군요. 여전히 날씨는 싸하게 춥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카레를 산더미만큼 만들었습니다.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번 만들어 두면 오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만들었지요. 부디 맛있어야 할텐데요. 엄마표 김치와 깻잎 그리고 오이지를 곁들여 먹는다면 뭐든지 맛있을 거에요. 호호. 유학생에게 소포로 배달되는 엄마표 반찬이 얼마나 귀중한 지 모른답니다.

그냥 주절주절 적어봤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놀러오시는 분들. 새단장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감기가 유행하는 환절기입니다. 학교 곳곳에 "최고의 감기 예방법-손을 씻으세요"라는 계몽 종이들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매우 자주 씻다보니 3년동안 감기에 한 번도 안 걸렸다는 주장을 하더군요. 효과가 있나봅니다. 여러분들도 손 자주 씻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My old blog

네이버 블로그 링크입니다. 예전 글이나 사진은 여기 가시면 보실 수 있어요.
http://blog.naver.com/fem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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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앞일은 모른다지만 제가 살아있는 한 이 이메일 주소는 변함없이 유지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