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17, 2008

My mentors

니나 선생님이 스탠포드에서 펜스테잇 인류학과장으로 옮기신 지 이제 삼년째이다. 얼마 전에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펜스테잇으로 옮긴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학과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한 해가 끝날 때면 니나 선생님은 인류학과 교수님들을 한 사람씩 개인 인터뷰를 하며 지난 한 해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한다. 이 때 앨런 워커 선생님을 '평가'해야 했던 날이 가장 이상한 기억 중 하나라고 했다.

신문에서 툭하면 '세계적인 학자 ***교수'라는 말을 잘 쓰는데 솔직히 기가 막힐 때가 있다. 한국 내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학자가 단지 기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세계적인 학자로 둔갑할 때 정말 기가 막힌다. 세계적인 학자라는 말은 앨런 워커 선생님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앨런 워커 선생님을 '평가'해야 했던 니나 선생님의 이야기가 재미났다. 인터뷰 전에 니나 선생님은 앨런 워커 선생님에게 "이렇게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 정말 이상하군요."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앨런 워커 선생님의 아내인 팻 쉽만 선생님이 나의 실질적인 논문 지도교수이다. 팻 쉽만 선생님은 예전 네이버 블로그에도 한 번 소개했지만 내가 하는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분이다. 그런 분께 일대일 지도를 받는 것도 영광인데 짬짬이 남편으로서 앨런 워커 선생님에 대해 듣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하루는 앨런 워커 선생님이 DVD 플레이어가 달린 커피 포트를 사 오셨다고 한다. 이걸 보고 아내인 팻 선생님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커피 포트에 웬 DVD가 필요하냐고. 집에 멀쩡하게 TV도 있고 DVD 플레이어도 있는데 이걸 왜 샀냐고. 이런 건 누가 사나 했더니 당신이 샀냐고. 그랬더니 남편인 앨런 워커 선생님은 머뭇머뭇 거리시더니 그냥 멋져 보여서 샀다고 하셨단다.

한 번은 두 분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길이어서 앨런 워커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갔다. 선생님의 자동차는 현대 XG 2000년 모델이었다. 앨런 워커 선생님의 자동차 자랑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XG가 엔진도 강하고 승차감 좋고 블라블라블라. 얼마나 만족해 하시는지 갑자기 내가 현대자동차 주인도 아니면서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뿌듯해졌다. 그렇게 식당 근처에 도착해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두 분이 계속 주차를 여기다 하자 저기다 하자를 놓고 옥신각신.

앨런 워커 선생님은 영국인이다. 영국 영어의 우아한 억양을 가지고 계신데 그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몇 십 년 전 어디어디를 갔을 때의 이야기를 줄줄 하기 시작하시면 넋을 놓고 듣게 된다. 이날 점심 때 들은 웃긴 이야기 하나. 선생님이 십년 쯤 전에 타지키스탄인가 그 쪽으로 발굴 조사를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 동네 작은 공항에서 밤을 새고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놀랍게도 그 공항에는 영국 항공사의 VIP 라운지가 있었고 선생님은 잘 됐다 싶어 그 라운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고 불도 켜져 있지 않아서 다시 나오려는 찰나.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을 감지한 웨이터가 나타나 컴컴한 라운지의 소파 쪽으로 선생님을 안내했다. 선생님은 여기 앉아서 자면 되겠군 생각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 오색 조명이 켜지면서 배꼽춤 의상의 여자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선생님을 감싸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브리티쉬 에어라인의 VIP 라운지라 해서 들어왔더니 이게 웬 디스코텍. 아니라고 나 잠 자러 왔다고 하자 그녀들은 선생님을 의아한 눈으로 보더니 감쪽같이 다시 사라졌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팻 선생님과 선생님 댁에서 미팅을 했다. 몇 번 가 본 집이지만 갈 때마다 참 좋다고 느낀다. 두 분이 각각 커다란 서재가 따로 있고 귀엽게 생긴 고양이 두 마리가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사셨다는 커다란 그림들이 집을 장식하고 있다. 앨런 선생님은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 한 명 있고 팻 선생님과는 아이가 없다. 벌써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 분은 함께 아프리카에서 발굴을 하며 펜스테잇에서 가르치며 논문도 같이 내고 책도 같이 쓰며 보내고 있다. 참으로 부러운 부부이고 이 두 분과 가까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3 comments:

Anonymous said...

멋지다. 앨런 선생님이랑 팻 선생님 부부. 두 개의 서재와 고양이 두 마리, 두 인류학자. ^^ 직업과 활동분야가 같은 두 사람이 부부로 사는 게 만만하지만은 않다고들 하던데, 너의 두 선생님은 참 멋진 관계를 형성하신 것 같네.

Anonymous said...

DVD 플레이어 달린 커피 포트를 산 선생님,
재미있으시네요. ^^

새로 옮긴 곳에서
그렇게 좋은 선생님들과 연구할 수 있어서
참 좋겠어요. 자극도 많이 될테고.

hedgehog said...

잠시 홈피를 방치해 둔 상태에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셨군요~

*헤라우스-네 말 들으니 정말 모든 게 쌍쌍이네. 재밌는 건 미국의 경우 인류학 커플이 정말 많다는 것. 아무래도 직업 상 돌아다닐 일이 많다보니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기 힘든가봐. 우리 과에만 교수님 네 쌍이 있잖어. ^^

*언니~ㅎㅎ 정말 희한한 물건을 다 사셨지요?! 싱가폴은 언제까지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