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5, 2008

Clean clean clean

*새해를 맞이하여 그간 미루어 오던 일을 한 가지 했다. 이름하여 우리 집 블라인드 닦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처음부터 창문에 달려있는 블라인드가 있는데 이게 어느날 만져 보니 꽤나 더러운 것이었다. 먼지가 소복하게 앉아있길래 닦아야지 닦아야지 하면서도 피일차일 미루어왔다. 세상에나. 블라인드 하나의 너비가 워낙 작아서 촘촘하니 창문 가득 블라인드 살이 붙어 있는데 그거 하나씩 걸레로 다 닦아 주다가 정말이지 폭발할 뻔했다. 걸레를 집게처럼 잡고 살의 양쪽을 쓱싹 닦아주는데 살이 수십 개는 되다 보니 이것을 끝내는데 상당한 정신 수양이 필요했다. 덕분에 지금은 뽀독뽀독하게 되었지만 나중에 내게 집이 생기면 창문에 이런 촘촘한 블라인드는 절대 달지 않으리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블라인드의 먼지도 몰랐으면 편했을테고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도 몰랐으면 편했을게다. 방학과 새해를 맞이하여 온 집을 한 번 뒤집어 주고 걸레로 마구 닦아줬다. 이 놈의 먼지는 공공의 적이다. 닦아도 닦아도 며칠 있으면 또 생기고. 걸레질을 하다가 '혹시 저기도 먼지가?' 하는 마음으로 그간 닦아보지 않았던 곳을 쓱 문지르면 백발백중 먼지가 싹 하고 묻어난다. 윽. 모르는 게 약인데.

*내가 사는 아파트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해가 질 때면 햇살이 넘치도록 들어온다. 이 때가 바로 먼지가 눈 앞에 나타나는 최고의 시간대이다. 이 때는 되도록 집에 있지 말거나 있다면 블라인드를 다 닫아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청소의 원칙. 모르는 게 약이다.

*갑자기 또 여기저기 마구 널려있는 종이 쪼가리들과 기타 등등 작은 물건들이 왜 이리 거슬리기 시작하는지. 일단 가능한한 모든 것을 서랍에 박아 버리고 침대 밑에 밀어 넣어 버렸다. 하지만 논문을 쓰다보면 또 종이들이 튀어나오고 연필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물컵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한 번씩 싹 청소를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셈 치고 있다. 청소기는 무거운 물건이다 보니 집 한 구석에 내 놓았는데 이 것도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꺼냈다 넣었다 하기 번거로워서 청소기를 안 돌리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두었는데 말이다.

*빨래에 또 왜 이리 열을 올리는지. 미국 살다보면 동전 세탁기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이 아파트의 세탁기는 세탁력이 영 별로다. 옥시크린 선전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것 같은 반짝반짝은 커녕 그저 그렇다. 세제 때문인가 했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중국에 살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배운 무엇이든 손으로 빨기 정신을 되새기며 이것저것 기분 내킬 때마다 세탁 비누로 깨끗하게 빨곤하는 버릇도 새로 생겼다.

*내가 집안에서 최고로 자신 있는 곳은 바로 부엌이다. 윤이 번쩍번쩍 까지는 아니더라도 깨끗한 부엌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음식은 열심히 해 먹으면서 그 음식을 하는 부엌은 더러운 것은 참기가 힘들다.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알고보니 그 부엌이 더럽다면 기분이 찝찝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제일 열심히 닦는 곳이 부엌이다.

*엄마와 이모들은 집을 정말 깨끗하게 해 두신다. 불시에 들이닥쳐도 옥의 티도 없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거기에 익숙해졌나.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엄마나 이모들의 살림 솜씨에 대면 새발의 피요 고목나무의 매미이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깔끔한 집은 인간미가 안 풍긴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집이 인간미가 넘치면 넘쳤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집 치울 시간에 다른 것을 하겠다고도 하는데 일단 버릇이 되면 집 치우는 것은 생각만큼 시간을 잡아 먹지 않는다. 사람마다 취미와 성격이 다르니 남이야 어떻게 해 놓고 살든 내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 집이 난장판이면 괜히 기분도 난장판이 된다. 거꾸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 된 집에 있으면 덩달아 내 몸도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에 중독되어 오늘도 난 계속 쓸고 닦는다.

*다 쓰고 보니 꼭 청소에 미친 정신병자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워낙 이곳에서 할 일이 딱히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보니 캘리포니아 살 때는 너무 귀찮아서 걸레 한 번 잡아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청소의 원칙 또 하나.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아니하다." 이는 유홍준의 말처럼 비단 문화유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청소의 세계에 입문하면 도저히 뒷걸음쳐 나올 수 없다. 어디어디에 먼지가 쌓인다는 사실을 한 번 알게 되면 그 다음에 그곳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웬만해서는 새로운 곳을 닦아보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혹시나 하고 닦아 봤는데 놀랍게도 먼지가 없네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참으로 희박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소 이야기는 여기서 끝!

7 comments:

Psyched said...

알게되면 보이나니..왕공감! 어제 또 오페웹사이트돌다가..크리스틴이 유령한테 키스하기전에 "I love you"라고 라울한테 읖조린다는 기가막힌 사실을 알아내고 영화를 다시보니..전에 있던 감동이 10배는 줄어든다..ㅠ_ㅠ..미치겠다..What a B****! OMG...

그리고 청소에 중독된건 심심해서 그런게 아닌거 같다. 나 여기서 10년살았는데 절대 청소안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심심하니까 개인의 특성이 좀 강해진다고는 내가 말해줄수 있다..

Unknown said...

언니~!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지난해 제가 좀 괴롭혀드려서 죄송해요^^ 원하는 일 꼭 이루시는 한 해 되세요~~!

Unknown said...

존경하는 J양! ^^새해 복 많이 받고 있겠지? 문득 이 블로그 오른쪽 위에 있는

God, grant me the serenity ~~~ 를 보고..

예전에 고등학교때 Kaist 교수 한 분이 와서 강의를 했었는데. 그 분이 이 시(기도문)을 소개해줬어. 자기가 유학하던때, 무슨 액자같은 것 파는 가게에서 이 기도문이 적힌 액자를 보고 '반해서' 힘들때마다 읊조렸다면서.

나도 이 글에 반해서 고등학교때는 노트에 적어놓고 읽고 또 읽고 했었는데,

주현의 블로그에서 잊고 있었던 좋은 글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퍼 담아 갑니다.

나는 3주간의 방학이 끝나고 오늘 spring term이 시작했음. 사실 방학이라하기는 뭐하고 주로 집에서 리라랑 놀던지 학교 도서관에서 에세이 쓴다고 머리 싸매고 있던지 했는데...휴..영어로 글 쓰기가 이렇게 힘든건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써본적이 없었으니^^).

예전에 '영어' 정말 피나게 노력해서 이제 아주 영어가 좋아졌다는 주현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했는지' 살짝 알려주면 정말 땡큐^^

물론 진리는 평범한데 있다고 아주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J양의 '특별한' 경험을 알고 싶어서.

원래 간단히 '위의 기도문 퍼감' 남기려 했는데 장문의 '주저리주저리'가 되버렸네^^

다시한번 새해 복 '이빠이' 받으시고
화이팅입니다.

런던서 재윤

Anonymous said...

주현씨, 새해를 맞아 더 씩씩하고 건강하고 결실맺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할께요! 한국오면 차 한잔에 사는 얘기 또 나눴음 해요.. 점점 멋진 인류학자가 되가는 주현씨가 참으로 부럽구만요... 멀리서 언정언니

hedgehog said...

*너 땜에 나도 당장 오페라의 유령이 보고 싶어지는군. 넌 누렁님도 있고 고돌이랑 망내고 있고 하니 안 심심한게지. ㅎㅎ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개인의 특성이 좀 강해진다는...!!

*주현아--네 댓글 보고 요기 위에 내 친구가 '주현'이라길래 나인줄 알고 갑자기 자기한테 무슨 소리냐고 묻더라. ㅋㅋ 고민하던 일은 잘 풀렸니? 궁금하네.

*재윤 오빠--"존경하는" 이 거 빼주세요. 아주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ㅋㅋ 저 기도문 정말 좋지요? 구절구절 팍팍 와 닿는다니까요. 제가 아무래도 영어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글을 썼나봅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은 맞지만 여전히 영어로 글쓰기는 너무 힘들고 아주 영어가 좋아지지 않았어요. ---;; 공부가 힘들어도 미소천사 리라가 있잖아요~화이팅!

*언정 언니--언니랑 통했나봐요. 조금 전에 언니는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댓글이 남겨져 있네요. 신기해라. 한국 가면 꼭 연락 드릴게요! 이번에는 차 한 잔 말고 날 잡고 하루 종일 놀아요!

Unknown said...

정말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아도 어쩜 그리 먼지가 계속 생기는건지..햇볕이 쫘악 들어오는 오후나절, 그 따뜻함을 느끼기 보다는 공기중에 떠있는 먼지가 먼저 보이는 현실이 슬픕니다그려..저도 좀 초연해져야 할 텐데 말이죠~

hedgehog said...

앗. 혜연 언니! 반가워요~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네요. 이쁜 둘째 낳으시면 꼭 상연이랑 다같이 찍은 사진 올려주세요. 언니는 일도 하고 상연이도 키우시고 먼지까지 싹싹 치우시니...참말로 대단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