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처음 들어간 1997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을 주구장창 보내는 일은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소위 PC통신이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나 모든 학생들이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PC통신 동호회들이 활성화 되었으나 그 역시 요즘에 비하면 참으로 소규모라 할 수 밖에 없다. 파란 화면에 접속 전화번호를 넣으면 전화 걸리는 소리와 함께 지지지직 하다가 드디어 서버에 접속이 되면 하얀 글씨들이 주루룩 뜨던 그런 원시적인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게임방이 아닌 당구장을 갔으며 집에 돌아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이 훨씬 많았다. 워드로 숙제를 해서 내야 했을 때에는 집에서 타이핑을 해서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학교 전산실에 가지고 가서 출력해서 내곤 했다.
핸드폰이라는 것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던 그 때에 우리들은 삐삐를 들고 다녔다. 삐삐 인삿말을 어떻게 녹음할 것인가 혹은 급하게 연락을 기다릴 경우에는 전화번호 뒤에 8282 등을 치는 것-이런 것이 우리들의 관심사였다. 그 때 즈음해서 원샷 018이나 거짓말도 보여요 016 같은 휴대전화들이 업계에 등장하면서 길거리에는 수많은 가판대가 설치되어서 공짜 전화기를 주면서 가입자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어디선가 얻게 된 씨티폰이라는 것을 잠시 들고 다녔다. 씨티폰이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이는 움직이는 공중전화와 같은 것으로 사용료는 공중전화와 같이 저렴하지만 걸어다니면서 쓸 수 있는 그런 휴대폰이었다. 문제는 지하에 내려가거나 공중전화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에 가면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012 모토롤라 삐삐와 씨티폰은 나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 미술사 시간에 발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미술사 서적을 펴 놓고 필름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그걸 들고 현상소에 가서 슬라이드 사진으로 현상한 다음에 슬라이드 기계에 넣고 프로젝터를 돌려 발표를 했다. 고고학 시간에는 커다란 도화지를 사서 거기다가 두꺼운 매직으로 어쩌고 저쩌고 적은 다음에 그걸 칠판에 붙여 놓고 발표를 했다.
내가 지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불과 10년 전이지만 적어놓고 보니 정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 마냥 원시적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과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은 지난 10년 간 엄청난 발전을 해서 이제 나의 하루는 컴퓨터 앞에서 시작해서 컴퓨터 앞에서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아예 집전화도 없이 휴대폰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 이제는 커피숍이나 공항 같은 곳에서도 무선 인터넷이 되고 손가락보다 작은 메모리스틱에 엄청난 양의 문서를 저장할 수 있다. 요즘에는 사진이나 그림이 필요하면 스캐너로 쓱 스캔해서 컴퓨터에서 손질한 후에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그걸로 발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니 필름 사진기와 현상소 그리고 도화지와 칠판이 웬말이란 말인가. 정녕 그렇게 발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박사논문 관련된 자료를 수집할 때에도 이제는 굳이 도서관에 갈 필요도 별로 없어졌다. 웬만한 저널들은 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을 수 있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참고문헌들에도 링크가 걸려 있어서 그냥 그걸 꾹 눌러주면 또 필요한 논문을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 박사논문도 컴퓨터로 쓰는 것이 당연하고 교수님들과 의사소통을 해야할 일이 있으면 이메일로 한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신문을 읽으려면 그것도 컴퓨터에서 하고 물건이 필요해 구입해야 하면 그것도 아마존에서 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가 컴퓨터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바로 어깨와 목 결림이다. 특히 요새처럼 아침부터 12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있는 상황에 놓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어깨와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저 위의 그림 속에 보이는 거북목 신드롬이란다. 윽. 내가 약간 거북목 경향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이 전형적인 증상인 줄은 몰랐다. 그림이 너무 적나라해서 무섭다. 컴퓨터 화면에서 튀어나온 거북목 거북이도 그렇고 사람의 등에 붙어버린 거북이 등딱지도 그렇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자세를 교정해야겠다. 앞으로도 컴퓨터를 더 쓰면 더 썼지 덜 쓰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냥 조금 아파요 이렇게 시작했다가 근육이나 인대에 손상이 생기면 정말 곤란하겠다. 오늘은 작정을 하고 누워서 목을 높여주고 책을 읽고 있으며 컴퓨터 앞에서는 의식적으로 목을 뒤로 당겨주고 있다. 찜질팩도 해 보고 요가도 해 보고 스트레칭 별거 별거 다 하는데 몇 달째 계속 아프다. 설마 만성 거북목이 된 건 아니겠지. 당분간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기로 했다.
갑자기 '구지가'가 생각나는 것은 또 뭔가.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 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뭐 이런 것 아니었나. 목이 아닌 머리였던가. 거북이는 목과 머리의 구별이 힘드니 목이나 머리나. 그나저나 나는 '구지가'를 반대로 불러야 하겠다. 거북아 거북아 목을 집어 넣어라 그러지 않으면 삶아 먹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