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12, 2008

Dinner Party

펜실베니아로 이사와 두 학기를 마쳤다.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꽤 즐거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곧 중국으로 몇 달 가 있어야 하니 아쉽기도 하고 해서 지난 금요일 저녁에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음식은 한국식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그 전날 장을 왕창 봐서 밤에 갈비 재우고 새우 껍질을 벗겨서 소금 후추 간을 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막상 금요일에는 숙제 하나 할 것이 있어서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친구들이 도착한 7시까지 세 시간동안 눈썹을 휘날리며 음식 준비.



일단 시금치와 숙주 나물을 무쳤다. 아무래도 시금치를 잘못된 종류를 샀는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맛은 시금치인데 크기는 완전히 열대지방 코코넛 나무 잎파리 만했다. 돌이켜 보면 왜 그걸 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초대형 시금치를 데치느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냄비를 꺼내야 했다. 데친 후에도 먹기 좋게 송송 썰어줘야 했으니 참말로 귀찮았다!

다음은 김치전. M양이 예전에 추천해준 미국 손님 접대 음식이었는데 정말 미국애들이 잘 먹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만들기로 했다. 김치만 넣어서 만들어도 되지만 마침 양파 반쪽이 남았길래 그것도 송송 썰어서 넣었다. 계란을 넣으면 쫀득한 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부침가루와 물만 사용해 부쳤다. 한 삼십 장쯤 부쳐서 오븐에 넣어두었다. 이건 엄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방법. 음식을 한꺼번에 다 만들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식은 음식을 내 놓을 순 없으니 오븐을 살짝만 예열해 그 속에 넣어두면 된다.

다음은 애호박전. 매번 미국 호박 사다가 계란물만 입혀서 부쳤는데 이번에는 한국 애호박을 사다가 제대로 부치기로 했다. 밀가루를 입혀서 계란물에 퐁당. 이렇게 하니 모양이 참 예쁘게 나왔다. 이것도 수십 개 부쳐서 오븐 속으로.

다음은 태어나 처음 만들어 본 소고기 깻잎전. 내 미국 친구들 중에 깻잎을 본 사람도 아무도 없었기에 웬지 친구들이 신기해 할 것 같아 만들기로 했다. 간 소고기에 두부를 반 모 으깨서 넣어주고 양파를 채썰어 넣은 후 만두 속 만들듯이 조물조물 반죽을 해 준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해 주면 끝. 밀가루를 깻잎의 한쪽에만 묻히고 반대쪽에 속을 넣어 깻잎을 도로록 말아준다. 그걸 계란물에 퐁당하여 바로 부치면 된다. 깻잎을 바라보던 내 친구들--"What is that?" 생깻잎을 하나 줬더니 조금씩 뜯어먹고는 너무 좋아한다. 향이 너무 좋아서 깻잎 향수를 만들어도 잘 팔리겠다나?!

홀리, 아냐, 테스, 제이슨, 가드윈, 크리스, 새라가 모두 도착. 갈비를 굽는 동시에 새우를 튀기기 시작했다. 튀김은 미리 만들어 두면 눅눅해 질테니 맨 마지막으로 만들었다. 어젯밤에 껍질 벗겨 손질해 놓은 새우를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 순서로 입힌 후에 기름에 퐁당퐁당. 자그마치 1킬로그램 어치나 튀겼는데 이날 새우는 바로 동이 나 버렸다. "와우~Is this 텐푸라?" 하면서 맛있다고 냠냠.

후식으로는 엉터리 방터리 수정과를 내 놓았다. 엄마 말로는 수정과에 곶감이 없으면 되냐고 하셨지만 감을 절대 안 좋아하는 내가 곶감을 살 수는 없는 일. 나는 생강을 별로 안 좋아해서 수정과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모인 내 친구들이 계피와 생강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번 만들어봤다. 시나몬 스틱과 얇게 저민 생강에 물을 부은 후에 팔팔 끓이다가 설탕을 넣어 달달한 맛을 내 주면 끝. 생각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야 그 맛이 나더군. 어쨌든 친구들은 수정과 한 대접을 다 비워주었다.

너무 음식을 많이 만든 게 아닌가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웬걸. 남은 것은 김치전 두 장과 깻잎전 하나 뿐.

-간장과 와사비. 와사비 가지고 장난 한 번 쳐봤다. =) 예전에 쟈니스 라켓인가 그 음식점에 가니 케찹을 저렇게 주더군.-

이날 밥 다 먹고 얘네들이 사 온 엄청난 술로 그야말로 파티를 벌였다. 맥주 한 박스 다 마시고 내가 가지고 있던 중국에서 가져온 고량주 한 병부터 비우고. 으흐흐. 고량주 처음 마셔보는 내 친구들. 다들 그 다음날 고량주 때문에 속 뒤집어졌다면서 다시는 안 마신단다. ㅎㅎ 이번에는 자기네가 내가 안 마셔본 술을 먹여줘야 할 차례라면서 예거마이스터라는 술을 한 병 땄다. 진한 갈색의 이 술은 카라멜 냄새가 나는 물약과 같았다. 으...별로였음.

이 때 홀리가 데킬라에 타바스코 소스를 넣어 마시면 맛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몇 명이 뛰쳐나가서 데킬라를 사왔다. 그러더니 집에 있던 타바스코 소스를 정말로 섞는 것이 아닌가. 보고만 있어도 속이 이상했는데 다들 한 잔씩 마시기로 해서 나도 한 번 마셔봤다. 흠. 생각보다 맛이 이상하지 않았다. 데킬라의 강한 향과 타바스코의 매운 향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군. 소주에 고춧가루 넣어 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말하자면 이런 효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렇게 신나게 놀다가 12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친구들이 가고 나는 그릇을 몽땅 디시워셔 넣어 돌려준 후에 잤다. 엄마 닮아서 쓴 그릇 그냥 두고 못 잔다. 윽.

이제 며칠 있으면 또 짐 한 보따리 사서 중국으로 간다. 짐 싸느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게 좋더만 이제는 늙었는지(!) 이렇게 정신 없는 게 싫다. 어쨌든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 미친듯이 재미난 시간을 보내서 좋았다. 오늘부터는 냉장고 비우기에 돌입.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지금 밖에 기온이 영상 2도 정도 밖에 안 된단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 꺼내서 닭 칼국수나 끓여야겠다.